2011. 05. 26.
어제 이것저것 좀 찾다 보니 3시가 다 돼서 잠이 들었더니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힘든 일이었다. 힘겹게 일어나 대충 씻고 올라갔더니 인기척의 주인공은 메리 아줌마가 아닌 클리프 아저씨였다. 웬일로 아침 먹어야지~ 하신다. 시리얼, 토스트, 커피를 챙겨 티비 앞에 앉았다. 요거트가 너무 달다 보니 토스트랑 같이 먹기는 너무 힘들었다. 내일부턴 우유에 타서 먹어야지.
아침을 다 먹고 양치질하러 내려갔다가 왔더니 왠 아줌마 한 분이 계신다. 아.. 하우스 키퍼…가볍게 몇 마디 나누고 나 먼저 달팽이한테로 출발. 어제 줬던 사료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얘네들 왜 안 먹었어요?’ 물었더니 날씨가 추워서 그렇단다. 아.... 추우면 밥도 안 먹는구나.... 게으른 것들. 오늘은 먹이 다 주지 말고 빈자리에만 조금씩 채워주고 물만 가득 채워 놓으라신다. 보통 거의 오전 내내 해야 했던 일들이 1시간 정도 걸렸나? 다 끝났다. 이대로 쉬나.... 했더니 당연히 아니었다.
아저씨한테 혼나겠다. 닭 14마리가 고작 4개... 오늘은 저녁에도 달걀은 없었다.
오늘의 특별임무는 벌초. 아… 벌초…. 또 해야 하는군..
집에서 달팽이 농장으로 가는 사이에 작은 못이 하나 있는데 그걸 ‘댐’이라고 하더라고? 전에 우프 책 볼 때 ‘얘네는 웬 댐이 이렇게 많나?’ 했더니 그 댐이 작은 못들을 얘기하는 거였다. 그 주위에 수풀이 무성하게 드려져 있는데 그 주위에 아저씨가 작은 예초기로 풀을 베고 내가 그 찌꺼기들을 끌어모아서 버리는 거였다. 좀 하다 보니 아줌마랑 아저씨 두 분 다 사라지셨다.
시간상 티타임. 아저씨가 풀을 베지 않으면 내가 할 일 이 없기에 나도 따라갔다. 치사하다. 같이 가자고 좀 하지....ㅋ 내가 좀 늦었는지 손만 씻고 올라갔는데도 두 분 다 커피를 다 마신 듯했다. 그래도 꿋꿋이 내 커피 다 마시고 다시 출발. 근데 아저씨가 뭘 물어보신다. ‘발 사이즈 얼마야?’ ‘8.5에요, 왜요?’ 했더니 장화를 주신다. 거기다 긴바지까지… 뭔가… 그랬다.
생전 처음 신어보는 고무장화. 걸어 다니는데 느낌이... 그냥 이상했다. ㅋ
예초기를 나한테 주셨다. 뭔가 스페셜 한 걸 보여줄게 하시더니.... 나한테 일을 넘기신 것. ㅋ 와.... 어려웠다. 처음엔 돌이며 잘린 풀 조각이며 얼굴로 다 날아와서 이걸 어떻게 하나 했지만 하다 보니 이것도 일이라고 점점 익숙해져 갔다. 아저씨가 주신 신발이며 바지 덕분에 다리는 괜찮았다. 뭔가 맘에 안 드시는지 예초기를 줬다 뺐었다를 반복하시다가 점심 준비하러 가신다고 다 되면 불러주신단다. 이때부터 벌초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풀이 잘 베어지는 거다. 신나게 하고 있는데 어느 샌가 오셔서 이만하면 됐다고 점심 먹자신다. 내가 베어놓은 자리를 보더니 엑설런트~하신다. 옹싸. ㅋ
‘점심 먹고는 저~ 위에 가서 하자.’
‘네~ ㅡ,.ㅡ’
‘조그만데야~^_^’
뭐 이런 대화가 오가고 다시 집으로 갔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도우미 아줌마분이 가셨다. 아저씨랑 나랑 둘이서 먹는데 오늘은 뭔가 했더니.... 그 전에 먹던 고깃덩어리다. 또 전자레인지에 데우신다… 와 많긴 많았구나.... 근데 뭔가 살짝 다르다…. 어떻게 두 그릇을 만드셨는데 많은 걸 내게 주신다. ‘니가 일을 많이 해야 하니까’이러신다. 흠. 와! 근데 이거 맛있다!
전에 먹던 게 아니었다. 아마 메리 아줌마가 오실 때 가져오신 음식인 듯. 오늘도 점심 설거지는 내 담당. 컵이란 컵은 다 나와 있고 남자 둘이 그릇 두 개밖에 안 썼는데 싱크대가 넘친다. 30분에 걸친 설거지가 끝나고 시곌 보니1시반. ‘아저씨 언제 다시 일하러 가실 거에요?’ 했더니 2시쯤 간단다. ‘그럼 밑에 가서 좀 쉬고 올게요. 넘 피곤해요’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신다. 오자마자 실신. 1시 55분에 일어나서 양치질하고 장화 신고 기계를 들고 나섰다.
우리가 간 곳은 브렌트 아저씨 집 바로 앞인데 정말 조그마했다. 이걸로 끝인가? 진짠가? 역시 아니었다. 이미 하루 근무시간 6시간이 다 채워져 가고 있었지만 ‘뭐 그런 날도 있지.’ 싶었다. 조금씩 일 할 때도 있으니까… 근데 오늘은 솔직히 너무 힘들다. ㅎ
두 번째 임무는 트레일러에 쌓인 자갈들을 내려놓는 것. 삽질이 시작됐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삽질을 할 때마다 바퀴가 타이어다 보니 흔들흔들하는 것이 서핑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자갈을 내리고 트레일러를 차에 달아서 옮긴 다음 내가 해야 할 일은 트롤리에 옮겨 담아서 달팽이 농장 앞에 가져다 뿌리는 것. 아.... 포장하시려는 거구나.... 자갈을 담은 트롤리는 생각보다 한참 무거웠다. 처음엔 5 수레를 옮기자고 했었는데 3번 옮기고 나니까 오늘은 이까지만 하자신다. 오예. 3수레를 갖다 붓고 갈고리로 평평하게 다진 후 일과 종료. 아 힘들다.


이렇게 깔끔히 비웠다ㅋ
장비 정리하고 좀 씻고 올라와서 의미 없는 대화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브렌트 아저씨가 오셨다. ‘오늘 쉬는 날이에요?’ ‘아니 금방 가야 돼’ 근데 이 아저씨… 짐빔+코크캔을 마시고 있다… 방금 차에서 내렸는데 이걸 들고 온 거다. 대단하심. 도저히 피곤해서 안 되겠길래 얘기하고 먼저 내려왔다. 6시에 다시 올게요~하고. 내려왔는데 너무 피곤한 거다.. 샤워하고 누우려고 했는데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잠깐 누워있다가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 손만 씻고 홀딱 벗고 이불에 들어갔다.
종이류 쓰레기를 태우는데 눈이 메워서 고개를 돌렸더니 연기가 너무 멋지게 낀 거다.
실제로는 이거보다 훨씬 멋졌다. 아이폰 카메라 ㅡ,.ㅡ;
알람을 5시로 맞춰놨는데 너무 곤히 들었는지 깨어보니 6시 반이다. 헉.... 두 시간 가까이 잔 거다. 그것도 아저씨가 위에서 지팡이 같은 걸로 쿵쿵 치고 ‘ETHAN!’ 하셔서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 갈게요~’ 하고 세안만 대충 하고 올라갔더니… 맙소사… 바비큐다.. *_*
지글지글... 굽는 걸 보는 순간! 정작 고기는 안 먹어도 될 만큼의 포만감이 몰려왔다.
이전에 했던 바비큐와는 격이 달랐다. 제대로 된 그릴에.... OMG 맛도 죽였다. 핏기가 살짝 어린 게 한 입 베어 물려고 들었을 때 가운데에 보이는 선홍색은 감동이었다. 거기다 감자에 채소에.. 특히 콩이 맛있었다. 연심 멋지다는 말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다 먹어버렸다. 마치 누가 가져간 듯….
점심때쯤 오늘은 읍내 가실 일 없냐니까 없다고,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어제, 저녁 먹고 나니까 맥주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맥주 좀 사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말하지 그랬냐’ 하시는 거다. 말만 들어도 고마워요. 그럼 오늘 가자고 하신다. ‘아니 뭐 꼭 오늘 안 가도 돼요’ 이까지가 점심때쯤? 있었던 대환데.... 저녁 먹고 나서 커피 드실래요? 여쭤봤더니 ‘아니 우리 금방 나갈 거야’ 이러신다. ‘니 맥주 사러’ ‘오늘 꼭 안 가도 된다고 거듭 말씀드렸지만 그냥 가자신다.
기어이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도중에 지금 당장 가자 하시길래 따라 나섰다. 가면서 ‘너 운전하냐’ 물어보신다. 8년 동안 해왔다고 했더니 ‘그럼 한번 해볼래?’ 응? 지금? ‘해보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너무 어둡잖아요’ ‘뭐 어때 불 있잖아~’ 이러신다. 농담인가? 운전석위치가 아무래도 많이 어색할 것 같다고 했더니 오늘밤은 아니란다. 다음에 한 번 해보라고 하시는 듯. 오 이 아저씨 완전 고마운 분이시다.
보틀샵에 도착하니 직원이 도와준단다. 이것저것 살펴 보다 결국 4X로 정했다. 싸고 나름 맛있고. 카드로 결제를 하고 차에 실었는데 뭔가 잘못 됐나 보다. 다시 부르길래 갔더니.... 아 카드에 잔액가 없었던 것. NET-SAVER 계좌에 넣어놓고 일반계좌로 이체를 안 했던 것. 나중에 알았지만 내 일반계좌에는 $0.05가 들어있었다. ㅎㅎ 빨리 떠났으면 돈 굳을뻔했네. 캬캬.


나 혼자 다 마시게 될 맥주와 내 맥주가 들어있는 다용도실. 별게 다 있다. 심지어 세탁기는 두 개다. ㅋ
이체를 하려고 폰을 켰는데 너무 느린 거다. 눈치 보여서 ‘다른 내 계좌에서 이체해서 결제를 해야 하는데 신호가 약해서 그런지 너무 느리네요’ 했더니 직원은 ‘이 좋은 기계가 느리다고요? 이러고 클리프 아저씨는 그때 내 폰을 보시더니.. ‘아 옵터스..’ 이러신다. 이거 별로 안 좋은 건가 보다.. 그런가? 나는 괜찮은데..
아무튼 다시 결제하고 오랜만에 ‘CIAO’ 한마디 해주고 집으로 출발. 집에 와서 난 맥주, 아저씬 와인 마시면서 얘기가 시작됐다. 전에 하던 얘기–인생에 있어서의 경험, 군대, 부모님 등–들이 거의 지난번이랑 똑같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아저씬 이미 취하신 듯 비틀거리셨다. 오늘은 랩톱을 가져갔었기에 내 음악 몇 곡을 틀었다. 클래식은 전에 들려 드렸으니 오늘은 재즈.
이상하게 NAT KING COLE 아저씨 음악이 생각이 나는 거였다. MILES DAVIS, NAT KING COLE, TONY BENNETT의 음악을 배경으로 서로가 느끼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음악은 멋진 거야’ 뭐 대충 이렇게 얘기 매듭을 맺었다. 아저씨가 너무 급 피곤해 보이셔서 먼저 내려왔다.
아 오늘은 나름 보람 있는 하루였다. 안 쓰던 돈을 좀 쓰긴 했지만 필요했던 거니까… 근데 종일 너무 피곤하네.. 저녁 먹고 내려와서는 샤워하고 잘랬더니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내일은 오랜만에 아침에 샤워하는 날이 되겠군. 아니면 그냥 스킵ㅋ.
한 번씩 느끼는 건데, 예전엔 일기를 쓰면 일과가 아니라 그 날의 느낌을 적었었다. 늘 겪는 일상이지만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었던 일에 대해서.... 그 시간으로 내 생각은 좀 더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땐 지금처럼 오랫동안 적지도 않았었다. 또 그땐 컴퓨터가 아닌 노트에 손으로 직접 적었었고.
하지만 지금의 일기는 온통 FACTS뿐이다.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난 블로깅을 위해 이 일기를 적는 것인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 많은 글을 다시 읽게 될까. 만약 다시 이 글들을 읽게 된다면, 옛 사실에 대한 추억에 잠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생각이 자라온 과정을 돌이켜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갑자기 푸념식으로 바뀌어버렸네. 잘 시간인가보다. ㅎㅎ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