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난… 거는 아니구나. 누군가
왔다 갔다 했는데 데런보다는 일찍 일어났다. 대충 얼굴에 물 칠만 하고 나와서 시리얼 한 그릇 해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할 건 다 한다. 칭찬 좀 받아보려고 일찍 나왔는데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다. ㅅㅂ 냉정하다.
연장을 챙겨서 란테나? 멕시코에서
날아온 몹쓸 놈을 제거하러 출발. 데런 녀석은 잠깐 와서 뭐 좀 둘러보더니 깜깜무소식. 혼자서 쓱싹쓱싹하는데 왠지 몸이 가볍다. 즐겁게
하다가 11시가 되니 반사적으로 ㅋㅋ 셀프 티타임이다. 혼자
가서 커피 타고 비스킷에 시럽 발라서 소파라고 생긴 데에 앉아서 냠냠. 혼자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하다. ㅋ 20분쯤 지났을까. 다시 출발. 잠깐 쉬고 왔더니 일하기 싫다. 병이다 병. 억지로 하다 보니 다시 속도가 붙는다.
영차. 힘내서 하다 보니 론다
아줌마가 점심준비 됐단다. 허걱. 카레다. 내가 어제 못산 카레… 뭐지… 눈치 주나.. 여기서 만국공통의 ‘내 새끼 사랑’을 느꼈다. 전에도
설마… 했었는데 오늘은 확실하다. 카레의
양이… 내 그릇에 있는 밥에는 카레가 힘겹게 붙어 있는 반면… 데런의
밥그릇엔 밥알이 헤엄치고 있다. 너무 쪼잔한 거 아니냐고? 모르는
말씀 마시라.
매번 식사시간마다 느끼는 거였는데 설마~ 하고
넘어갔었다만… 오늘은 너무 정확하게 봐버린 것. 그래. 내 잘못이다. 보지 말걸....ㅎㅎ 어제 사 온 라면 먹을래? 물어봤더니 데런은 그러잖다. 아줌마한테도 물어봤더니 ‘니가 하면 우린 조금씩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래? 해준다. 어제 두 개 사온 라면 전부 끓였다. 사실 오늘 오전 내내 라면 생각하고 있었기에 멈출 수가 없었다. 보글보글. 잘도 끓는다. 다 익었는데 사람들이 안 나온다. ㅆ… 다 퍼졌어… 촌놈들아
이건 빨리 먹어야 한다구.
뭐 빈말이겠지만 괜찮네~ 한다. 좋다는 말은 절대 안 한다. 지난번 짜파게티 때도
그랬던 듯. 다 먹고 나니 설거짓거리가 산더미다. 저걸
언제 다하나 하고 있는데 데런이 ‘너도 좀 쉬었다가 해~’ 퀵
브레이크? 이런다. 좋다~ 배도 부르겠다 냉큼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시체처럼
잠이 들었다. 눈 떠보니 잠들 때 모습 그대로다.
데런은 아직 안 일어난 듯. 설거짓거리가
좀 줄어든 것 같다. ‘내 오늘 마지막인데 싹 다 해줄게’ 하는
마음으로 시작. 40분쯤 걸린 것 같다. 이
사람들 설거지하는 거 너무 더러워서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 편하겠다 싶다. 근데 할 때마다
눈치 보인다. ㅋ 설거지하고 나니 데런이 일어났다. 2차
란테나 작업하러 가잖다. 우울하게 응. 대답했다. 같이 일하면서도 말 절대 안 한다. 지난번에 린킨팤
얘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듯.
혼자 머첸티(도끼 같기도 하고 칼 같기도
한 물건. 스펠을 모름)를 휘두르다 엄마가 기분이
좀 안 좋은 거 같다며 확인하러 간다고 혼자 한참을 얘기하다 간다. 가라 가. 나무들을 주워 담아서 말 들이 계시는 곳에 옮겨놔야 하는데 이놈의 말 색히들이 입구에 떡 하니 지키고
섰다. 나도 섰다. 졌다.
옆으로 좀 피해서 ‘비켜줘 나
일 해야 해~’ 했더니 우리말을 알아 듣는지 비켜준다. 근데
저 멀리 비켜주는 게 아니라 좀 당겨 준 듯. 가져온 나뭇가지를 부으면서 말들 눈치를 본다. ㅅㅂ.. 더럽다. 말
눈치를 보다니… 근데 오늘 말 눈치 본 게 처음이 아니다. 나쁜
말. 표정은 완전 측은하다. ‘너 그렇게 사는 게
좋니?’ 물어보는 것 같다. 혼자 뚝딱뚝딱하다
보니 산만한 뿌리도 몇 개 뽑았다. 완전 대견. 소리
질렀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ㅋ 데런 너는 죽었다
깨나도 못 할 거다.
지난번 예초기 날 교환 사건 하며 그 전에도 일하는 걸 보니 얘가 좀 멍청한 것
같다. 모르지 이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암튼
난 그렇게 생각한다. 데런은 멍청하다. ㅋ
뿌리를 몇 개 뽑다 보니 도끼질할 일이 생겼다. 솔직히
꼭 도끼질은 필요 없었는데 이때 아니면 언제 도끼질을 해보나… 하는 생각에 도끼를 가져왔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무 님이
아주 촉촉하셔서 그런가… 나무가 흙 속에 파묻혀 있던 거라 완전 눅눅하다. 어떻게 어떻게 도끼질 성공. 뿌리 전부 갖다 나르고
말 눈치 또 보고… 사진도 찍었다. 다하고
뭐하러 갔는지 집에 잠깐 들어갔는데 데런이 있길래 ‘야 나 다했어!’ 아주 기쁘게 말했더니. 이 개….
아주 시큰둥하게 ‘알았어, 좀 이따 가서 볼게.’ 이 씨ㅂ… 갑과 을의 관계가 된 것 같았지만 마지막 날인데
그냥 가자 싶어 가만있었다. 가서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굿좝 이런다. 옆에
도끼가 보인다…
‘그럼 나 이제
수영하러 갈래~ 완전 더워’ 했더니 씩 웃으면서 ‘are you really sure’ 이런다. 하긴
차갑기는 정말 차갑다. 심장이 얼어 터지는 줄 알았다 지난번에. ‘응 I’m really sure’ 이러고 갔다. 오늘 좀 덥긴 했는지 지난번만큼 춥지는 않다. 오늘은
안 가본 데도 가보고 ‘진짜 수영’도 했다. 어푸어푸. 팔이 물 밖에 나왔다 들어갈 때마다
이 팔이 내 팔인가 싶다. 오늘도 발가벗고 물놀이. 지난번만큼
짜릿하진 않군… 쳇.
앗. 시간 순서가 좀 뒤바뀌었다. 아무튼, 앞에 얘기한 일들을 하고 나서 일을 좀 하고 있는데
아줌마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뭐라고 한다. 아~ 며칠
전에 하던 불놀이 하려는구나 옹싸~ 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어제 집에 오는 차에서 잠깐 얘기했던
말타기! 오예~~~~~~~~~~완전 신난다. 나 말 탄다! 공짜로! 내가
탈 말은 모기. Morgan인데 Morggy로 부른단다 Moggy인지 Morggy인지는 모르겠다. 얼굴에 밧줄 같은 거… 를 메더니 아줌마 무릎을
밟고 올라서 타란다. 안장이 없다. 말
머리털을 붙잡고 올라 탔다. 처음엔 실패하고 두 번 만에 탔는데 ㅋㅋ 말 등뼈? 척추?에 똥꼬가 안착이 됐다. 이상하다. ㅋㅋㅋ
와 근데 정말 높다. 신기하고. 목 끈을 잡지 말고 갈기를 잡으란다. 끈 잡으면
쌩~하고 달려나갈 수 있다면서. 오늘 처음 알았는데
말 대가리에 걸리는 줄이 말 입에 걸리는 거였다. 이빨 아프겠다. 암튼 아줌마가 줄 잡아주고 난 말갈기 잡고 5분쯤
탔는데 무섭더라. ㅎㅎ 신기하고 재미있고 복잡했다. ㅎㅎ 자꾸 방에서 쥐새끼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썅. 불도 안 들어오는데.
오늘 생전 처음, 눈치 보던 말 등에도
올라타 보고 ㅎㅎ 매일매일 이렇게 신나는 경험만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는 것. 절대 잊지 말자. ㅋ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론다 아줌마가 저녁 먹잔다. 바비큐 하게 오란다. 오예~ 또 바비큐~ ‘근데 나 하던 거 마저 끝내야 해요’ 했더니 아줌마가
아주 기특하게 쳐다본다. 내일모레 서른인데… 그래도
데런이 쳐다보는 것보다는 썩 좋다. 훗. 뒷정리
좀 하다 보니 아줌마가 데런 좀 불러와달란다.
난 처음에 데런 거기 있냐 물어보는 줄 알고 ‘노’ 했는데 아줌마가 다시 말하길래 자 들어보니 불러달라는 거였다. 아주
큰 소리로 노~ 했는데 상처받으셨겠다. 내가
잘못 알아들었다는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ㅎ 쏘리염~
정리를 끝내고 바비큐장으로 갔더니… 빵
굽고 있다. 빵 같은 소리 하네… 아 실망했지만
오~ 이거 뭐에요~ 완전 신기해했다. 난 오바 잘하니까. ㅅㅂ.... 빵이라기보다는… 빵이랑 머핀이랑 중간쯤 되는
것 같은데 토스터가 없어서 직화구이로 다 태워서 먹는 거였다.
아줌마 드시는 걸 보고 저걸 어떻게 먹지… 했더니
많이 탄 부분은 개한테 준다. 응? 이
사람들 완전 웃기다. 식구들끼리도 병균 생각해서 식기 따로 쓰면서 자기 전에 양치질하는 꼴을
못 보겠다. 이만 그런가.. 세수도 안
하고 발도 안 씻는다.
종일 개랑 물고 빨고 쌩쇼를 다하고 맨발로 저벅저벅 다니면서 ‘식구들끼리’ 병 옮을까 봐? 옮길까 봐? 암튼 그릇도 따로 쓰고 설거지는 어떻고… 처음에 기절할 뻔했다.
내가 한국에서 이렇게 했으면 적발되는 순간 난 더 이상 집에서 밥 못 먹는다. ㅋㅋㅋ 설거지 끝난 그릇에 거품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여럿이 사이좋게. 그 빵 같은 거 다 먹고 나니까
마시멜로 구워 먹잔다. 오~ 이건 진짜
좀 기대된다. 오바 아님. 건강 챙기는
오스트레일리안 님들 나무꼬챙이에 끼워서 굽는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충분히. 한국에서도. 하지만 내가 봐온 이 오스트레일리안은
이러면 안 된다. 이번엔 당황하는 모습을 데런한테 들켰다. 눈치챈
듯 ‘괜찮아’ 이런다. 옆에 불도 있는데…확…ㅋ
와 근데 맛이 정말 다르다. 그냥
파는 상태로 먹는 거랑 완전 다르다. 구울 때 누가 좀 태웠는데 솜사탕… 아!! 국자! 국자 냄새가 났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살살 녹는다. 완전 달다. 두 개 먹고 그만 먹고 싶었지만(한 꼬챙이에 두 개) 두 개 더 해먹었다. 그러는 사이 다들 들어가고 나 혼자 좀 더 있다가 불 꺼지는 거 보고 들어갔더니 이 사람들 주방에
모여서 뽁짝거리고 있다. 불도 안 키고 뭐 하지? 낮에
전기를 많이 써서 방전된 거란다. 내일까지는 전기 안 들어온단다. ㅅㅂ 멋지다.
현재시각 18:29 허걱
잊지 못할 마지막 밤이다. 덕분에
양초 켜서 요리하고. 아 다행히 저녁은 따로 있었다. 소고기
스테이큰데 완전 느끼했다. 이상한 소스를 뿌려놔서 느끼한 데다 달콤함이 더해져 있었고 달콤이가
묻은 호박도 있었다. 밥은 왜 그렇게 많이 주는지. 평소의
세배는 준 것 같다. 밥이 좀 많이 남았었던 것 같다. 언뜻
냄비를 봤더니 ㅎㅎ
오늘은 보름이라 달이 정말 밝다. 진짜
서치라이트 같다. 덕분에 데런이랑 나랑 둘이서 야외 식탁에서 먹었다. 불 켜면 벌레들 모여든다길래 그냥 먹었는데 진짜 신기한 게 음식이 다 보였다. 하얀 건 밥, 검은 건 고기, 기타는 호박.
맛이 하도 적응이 안 되길래 후추 가지러 간다고 넌 필요한 거 없냐니까 없단다. 근데 이놈ㅋㅋ 밥을ㅋㅋ 후추에 비벼먹었다. 데런이
다 먹고 뻘쭘했는지 주스 갖다 줄까 물어본다 땡큐. 가지고 와서는 내일 새벽에 출발할 얘기
잠깐 하다 보니 나도 다 먹었다. 들어서 그릇 싱크대에 넣고 나니 굿나잇한다. 6시 반인데. 하긴 불도 없으니. 한국엔 아무리 겨울이라도 6시면 아직 밝은 편이었는데. 암흑천지…는 아니구나, 달이
워낙 밝으니.
비라도 오는 날이면 저녁 6시나
자정이나 똑같을 판. 난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밖에 구경 좀하고 들어오겠다고 먼저 자라고
했다. 밖에 나왔는데 완전 깜깜하고 무섭다. ㅋ
짐승들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놀라서 후뤠쉬를 돌렸더니 왈라비가 쫄아서 도망가고 있다. ㅋㅋ 나도 쫄았는데 나한테 좀 와보지~ 결국 코알라는
못보고 가는구나. 다시 들어왔다.
선물도 준비 못 했는데 편지라도 한 장 써놔야지
싶어서 급하게 후다닥 하나 썼다. 이로써 첫 번째 우핑 끝. 오늘
가족들이랑 사진 찍고 싶었는데–아 ㅅㅂ.. 또 방금
뭔가가 움직였다. 아주 가까이서 들리길래 내방에서 난 건가 했는데 지붕 위로 지나갔나 보다. 싫다 야생ㅠㅜ
정전에 아저씨가 몸이 안 좋아서 방에서 식사하시는 바람에 얼굴도 못 뵀다. 점심때 보고. 내일은 6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야 한다. 샤워는 할 수 있을까. 이젠
별로 기대도 없다. 거지꼴로 가준다. 그래도
씻고는 싶다. 오늘 강물에 몸 담근 게 전부라구~
일주일 동안 보여주신 당신들의 관심과 사랑 절대 잊지 않을게요. 당신들 덕분에 잊지 못할 경험 정말 많이 하고 갑니다. 다음
호스트는 어떤 사람일지 기대돼요.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 다음 호스트 만날 것이
벌써 걱정이 됩니다(전에 아줌마한테 했던 말).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내일은 엘리가 묶었었던 호스텔로 가기로 주인이랑 통화하고 픽업 나와달라고 말했더니 ‘ok’ 달랑 요거 보낸 사람을 로마역에서 만나야
한다. 12시쯤 도착한다고 했고 오케이라고 했으니 오겠지.. 내
짐 다 들고 차이나타운까지 걸어가는 건 미친 짓이다, 절대 안돼. 꼭 나와. 아… 근데
이사람 중국인 같던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제야 공개하는 실내사진. 정말 ... 그렇다ㅋㅋ
내일은 새로운 여정이 날 기다리는군. 달려와라. 와락 껴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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