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잠깐씩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는 한없는 친절을 느낄 수 있지만 내가 이곳 호주에서 한동안 지내오면서 느끼게 된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좀 무뚝뚝해 보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함께 지내보면 우리나라 사람만 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곳 주인들과 잘 지내고는 있지만 한 번씩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히게 되면 그제야 드러나는 모습이 그 누군가의 실체라고들 하지 않던가.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 습관에 관해서다.
며칠 전, 6주간 머물던 이곳에 ‘이제는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사흘 뒤에 떠나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계획이 어떻게 되냐며 ‘네 경험과 시간을 위해서는 아쉽지만 우리도 보내줄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아쉬움을 보였다.
이 ‘사흘’의 시간은 내가 처음 5/23에 이곳에 왔을 때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집에 대한 칭찬을 연신 퍼부어가며 ‘너무 좋지만 그리고 그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나야 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사흘 전에 얘길 할 테니 너무 당황스러워 하지 마시라’고 얘기했을 때 정해져 있던 시간이다. 그동안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웃을 일도 찡그릴 일도 많이 있었는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나 스스로 그 사흘을 견디며 다시 우리의 관계를 돌려 놓곤했던 중요한 시간이었다.
얘기를 하고 사흘째인 떠나는 날 아침, 주인아주머니께서 내 방으로 내려오셔서는 얘길 좀 하시잖다. 이제껏 이런 일이 없었기에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이 있나?’ 생각해봤지만 결국 없었을뿐더러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한 것이었다. 아주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혹시 아직 비행기 표 예약이나, 일할 곳이 정해진 것이 없다면 2주만 더 머물러 주면 안 되겠냐. 네가 만약 그렇게 해준다면 $600을 주겠다.’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첫째로, 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그동안 늘 최선을 다했고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내 선택이 내가 그동안 만들어 놓았던 이미지를 깎아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둘째, 내 지금 제정상황은 그다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는데 자던 곳에 자고, 하던 일을 하고, 만나오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 가치를 생각했을 때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라는 것, 셋째, 아직 확실하지 않은 계약밖에 없는 상황에서 2주라는 시간은 내게 적잖이 달콤한 시간이었다. 잠깐의 생각 끝에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So far. 내가 좋아하는 꼬꼬도 먹으면서.
아주머니께 준비해서 올라갈 테니 조금 있다 다시 보자고 말하고 샤워를 하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내 첫 번째 고민이었던 이미지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충분히 처음에 이야기했던 약속을 지켰으며 그들도 내 마지막 노티스를 받아들였고, 이로써 모든 것은 순조로이 흘러온 것이었다. 미안해야 할 사람은 아주머니였다. 그날은 내가 다시 시티로 들어오는 것을 축하해주기 위한 조촐한 자리가 계획되어 있었고, 그 갑작스러운 제안에 난 내 지인들의 배려를 무시했다. 그 외 두 번째, 세 번째 문제는 아직은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고 오늘, 일과를 마치고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고 있는데 TV에 일본의 진주만 폭격의 피해자들에 관한 영상이 나왔다.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일본의 만행을 비판하는 내용인 듯했다. 문득 생각 난 것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동안 그토록 일본을 싫어했던가’와 ‘그 외 외국인들이 알지 못했던 사실에 관해서 이야기 해줘야겠다’였다. 내가 그들을 그렇게 증오하게 된 것은 일제 침략기 시절, 그들 중 몇몇 군인이 우리의 땅에서 이미 숨진 우리나라 사람의 시체를 가지고 놀고, 그 위에서 아주 즐겁게 웃으면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부터였다. 그 당시 난 14살 아이였으며 약 50장 정도의 사진을 봤고, 그 충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은 전쟁 당시 우리네 국명을 Corea에서Korea로 바꿨으며, 우리 여성들을 노예로 데려가 성 노리개로 삼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독도까지 훔쳐가려고 용쓰고 있다’까지 이어졌다.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생각되고 말도 제법 잘했었다고 생각된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역사는 역사일 뿐이지만, 누구도 그 개인의, 민족의, 국가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결코 그 역사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라고, ‘Our scars have a power to remind of the past is real… like this.’ 이Like this는 내가 만났던 첫 번째 호스트의 농장에서 일하면서 Lantana라는(스펠링은 정확하지 않음) 나무에 긁혀 생긴 상처인데, 그 시궁창 같은 곳에서의 시간이 이 상처로 늘 기억될 것이라고 다 같이 종종 이야기해왔었기에 다소 무거울 수 있었던 얘기지만 유쾌하게 매듭을 지었다.
한국에 있을 때, 주로 외국영화를 보며 괜찮다고 생각되는 대사는 언젠가는 쓰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계속해서 적어놓는 버릇이 있었는데 저 대사는 영화 ‘한니발’에서 앤딩 즈음에 렉터박사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했던 말이다. 당시에 난 그 말에 너무 빠졌고, 무슨 말인지 알기 위해 50번쯤은 그 부분을 돌려봤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저 대사 말고도 ‘나쁜 녀석들’, ‘롱 키스 굿나잇’ 등등 많은 대사를 써먹었던 것 같다. 비록 창의적인 방법으로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으나, 내 이 습관 덕분에 오늘 저녁의 대화를 멋지게 마무리 지었고, 누군가가 강조했던 위트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것들을 결코 미래와 연결할 수는 없다. 오로지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봤을 때만이 그 점들을 연결할 수 있다’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기조연설에서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이 이미 내가 해 오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돌이켜보면 참 많은 것들이 우리네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의 대화에서 내게 도움을 줬던 것들.
1. 필기하는 습관
2. 영화 ‘한니발(혹은 레드 드래곤)’
3. The Presentation Secrets of Steve Jobs’
4. Steve Jobs' Commencement speech at Stanford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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