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5. 12.
짧은 하루가 갔다. 현재 시각, 7시 7분. 다들
자러 들어가는 터에 나도 방에 왔다. 뭥미? ㅎㅎ
거짓말쟁이들… 분명히 어젯밤엔 7시 반에 아침 먹자고 했었다. 신경이 쓰여서인지
어제 너무 일찍 잔 탓인지 7시부터 눈이 떠지는 걸 버티고 버티다 30분에 나와봤더니 아무도 없다…. 혼날래? 거실–말이 거실이지–에
앉아서 기다려봐도 아무도 안 나오길래 혹시 아침 일찍 나가면 왈라비 친구들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갔는데 아무도 없네…. 힝.... 신발만 버렸다. 아침이슬이 얼마나 내려 앉았는지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신발이 흥건해졌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들어갔더니 굿모닝이라고 한다. 그래. 굿 모 닝.
이 집의 큰아들 데런이 방긋 웃어준다. 아침은
어떻게 먹냐니까 여기 있는 시리얼 먹고 모자라면 빵 먹으란다.
‘응? 아침 같이 먹는 거 아니야?’
‘응 나이야
그냥 챙겨 먹으면 돼.‘
아놔… 그럼 시간은 왜 정해. ㅠㅠ 뭐 아침의 첫 대화가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시리얼, 버터 바른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일하러 가잔다. 씻지도 못했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집에 사는 동안은 그렇게 열심히 안 씻어도 되겠다 싶다. 뭐 맨날 보는 사람들에 외부인 출입도 전혀 없고 여기 이 가족들도 그다지 깨끗하게 사는 것 같지는
않다. 집 더러운 건 진작 알았지만 머리를 감는다든지 하는 그런 게 뭐….
오늘의 임무는 잡초 정리. 잡초가
내 키만 하다. 흠.... 잡초라고 하기엔
좀 뭐하고 잡초 같은 녀석들인가보다. 뽑는 게 제일 좋고 안되면 베어내란다. 다 뽑았다. 젠장. 자기는 예초기로 윙윙한다고 나보고 이거 하라더니 기계가 고장 났다고 좀 있다 온다길래 그러랬더니 나중에
와서는 같이 잡초 같은 친구들 뽑는다ㅎㅎ 뭐 성한 게 잘 없는 집인 것 같다.
혼자 일 하려니까 심심하길래 이제는 아이팟으로 변해버린 아이폰에 노래를 켰다. 제이슨 므라즈 노래가 지나고 Faint가 나오니까 린킨팤이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말하고 전에 어디선가 들은 걸 물어봤다.
너희들은 미쿡사람 미워하지 않냐? 좀
그렇단다. 한참 얘기했는데 정리해보자면, 미국인들의
거만함이 이곳 사람들이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고,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disgusting을 썼던 것 같다. 그 얘기를 하는 중에 데런이 ‘잉글랜드도 좀 그렇다…’ 면서 얘길 하길래 너희도
혹시 한-일 관계 같은 거냐.. 했더니 sort of란다. (여기 사람들 축약형 이런 거 wanna, gonna 절대 안 쓴다 희한하다) 아싸. 이때다 싶어서 독도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독도
알지?’ 했더니 모른데… 오마이갓. 설명에 들어갔다.
울릉도 옆에 있고 경찰이 거주하고 왜놈들이 국제재판 끌고 가서 뺏어가려는 개수작
부리는 중이라고.... 실컷 얘기했는데…. 반응이
시원찮다. ㅈㄴ…. 중립이다. 독한 놈 실컷 얘기하고 나니까 기가 막힌 타이밍에 티브레이크 좀 가지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당근 콜이징. 들어가서 물 끓이는 동안 반-자동 구둣솔 머신 만드는 거 거들어주고 개들이랑 좀 놀고 그러다 보니 12시.
수제 반자동 구두닦이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나왔다. 이번엔
아줌마도 같이 왔다. 이번에는 심장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응? 아까 하던 거 마저 안 하고 딴 거 해?’ 그렇단다. 이 사람들 쿨하다.
심장이 뭐냐면… 얘네들 땅이
엄청나게 큰데–하긴 단위가 장난이 아닌데… 에이커다. 에이커–여우들이 나와서 여우 짓을 한단다. 다른 조그만 애들을 잡아먹는다고… 그래서 정육점에
가면 파는 양의 심장을 사 와서 거기다 독을 주사기로 넣고 땅속에 묻어두는 거다. 여우 사체는
확인할 수 없지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뭐
아무튼 온 동네방네 뿌려놓은 심장들을 수거하러 쫄쫄 따라다녔다. 나중에 다 수거하고 나서는 양지바른
곳에 올라가서 구덩이를 팠다. ㅡㅡ;; 태워야 한단다. 곡괭이랑 삽이랑 가져간 거로 졸라 팠다. 곡괭이질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가르쳐 주는데… 보통이 아니다 최고 ㅋ
그렇게 판 구덩이에 심장꾸러미를 넣고 기름–경유–을 붓고 성냥을 넣었더니 활활 탄다. 불타는 심장. 냄새 장난 아니다. 나중에 잘 안 탄 심장을 꼬챙이로
뒤적거려서 나뭇가지 위에 올려 놓는 데 성공했는데… 고기 구워놓은 색깔이다. 하긴 고기는 고기니까…
좀 미안하다. 흙… 그러던 중에 점심 메뉴 얘기가 나왔는데 이번엔 데런이 먼저 물어봤다.
‘엄마 우리 점심 뭐 먹어’ 오늘의 메뉴는 카레란다. 아싸. 완전 좋아한다고 방방 뛰면서 얘기했다. 심장 불태우기 다하면 내려가서 먹잔다 오예. 룰루~ 하면서 집에 들어가서 대충 씻고 오니까…
카레+파스타… 이씨ㅂ… 뭐야 장난쳐? ‘파스타야? 카레라며?’ 물었더니 쌀로 된 면이란다. 이쌰…………ㅇ. 멍청이들아 카레엔 밥이지 한국 밥! ㅈㄴ… 카레… 맛은… 그냥 카레라니까 카레구나 하고 먹는 거다.... 그냥
짜다. 얼마나 짠지 먹는 중에도 입 주위가 따갑다. Thank
you for the meal 해주고 오렌지 주스 한잔한다. 아.... 짜다.
밥 먹고 나서는 오늘은 내가 설거지해줄게 라고 했다. 사실 첫날부터 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잘 안 맞더라고 그랬는데 이 데런색히… 씹는다. 바로 옆에서 얘기했는데….
근데 이놈 좀 특이한 게 나한테는 모든 것들이 다 생소한 처음 하는 일인데 옆에서
잠깐 하는 거 한번 보여주고 쓍~ 간다. 내가 하는
건 보지도 않고. 뭐 이번 설거지도 그렇다. 그냥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하더니 그냥 쓍~갔다. ㅎㅎ ㅈㄴ쿨하다. 뭐 그렇게 다 처리하고 돌아보니
다들 사라지고 아줌만 혼자 컴퓨터 하고 있다. 데런 어디 갔어요? 물었더니
처잔단다. 이 개… 그러면서 나보고 ‘너도 좀 쉬든지 나가서 바람 쐬든지 뭐 책을 보든지 너 하고 싶은 거 해~’ 이런다.
오예~ 이러면서 나왔다. 사실 오예~할 기분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웃어야 한다. 뭐 솔직히 웃지 않을
이유가 없긴 하다. 그게 3시쯤이었는데…. 나와서 책을… 네 장쯤 읽었나? 잠 온다ㅎㅎㅎ 내려가니 아줌마 아저씨가 거실에서 대화 중이시다. 이
가족들 대화하는 모습 하나는 정말 멋지다 쿨~~ 나보고 씩~ 웃으시길래 ‘아놔~ 나 이제 잠 와요~’이러면서 자러 들어왔다.
눈떠보니 6시…. 한 시간 반을 잤다. 돌았지.... 나와보니까 아줌마가 안 그래도 노크해서 깨우려고 했었단다. 히히
웃으면서 주방으로 갔다. 메뉴가 뭔지는 묻지 않았다....ㅡ,.ㅡ;; 파스타다. 스파게티. 그거 쳐다 보고 있는데 데런 좀 깨워오란다. 예… Hey, Deron dinner’s ready. 나온단다. 나와서는
내 접시에만 담아주고 어디 간다. 씻으러 가나? 암튼
가는데 이놈이 정말 조금 떠주고 간 거다.. 난 아 유 시리어스? 하는 표정으로 그놈을 쳐다보고 있었고.
근데 앉아서 먹다 보니… 많다. ㅎㅎ 게다가 완전 딱딱하다. 2시간은 더 삶아야 ‘아, 이제 좀 먹을만하겠구나’ 할 만큼 딱딱하다. 이 아줌마… 마치 우리 샤부샤부 먹듯이 스파게티
면을 넣자마자 뺀 듯하다.... 대단하다.... 오늘
저녁 먹을 땐 한마디도 안 했다. 아 완전히 안 한 건 아니네.... 이
집 식사습관이 특이한데 식탁을 전혀 안 쓴다. 그냥 탁자로 놔두고 과일 올려놓고 뭐 그 용도가
다다.
식사는 거실 소파에 거의 눕듯이 처 앉아서 멋진 대화스타일을 유지해가면서 먹는다.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싶어서 물어봤다. ‘다른 호주
사람들도 당신네처럼 밥 먹어?’ ㅎㅎㅎ 데런이
대답한다. ㅎㅎㅎ ’아, 우리는
티비안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임마 티비 말고 식탁말이야ㅋㅋㅋㅋㅋㅋ
웃음.... 참았다.
‘아니 아니
식탁 안 쓰고 접시 손으로 들고 이렇게 다들 먹냐고’ 그제야 ‘아~ 뭐 다들 그런 건 아닌데 보통 식탁을 쓰지 우리는 식탁이 저렇게 돼 있잖아~’이런다. 심심하다. ‘나한테는
굉장히 생소하다. 우리는 메뉴 자체가 이렇게 먹는 게 불가능하다.’ 말해주고 대화 끝. 아 맞다. 한국에서 밥 이렇게 소파에 앉아서 먹다가 아버지한테 걸리면 처맞을 거라고 말해줬다. ㅋㅋ이런다ㅋ
오늘은 샤워를 해야지~ 아침에도
안 했는데. 저녁 먹자마자 아줌마가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피곤하다면서 자러 간다길래 쫓아가서 샤워해도 되냐 했더니 4분 준단다ㅋㅋ 이 아줌마
개그 친다. 샤워시간은 어제저녁에 한참 얘기했는데 그냥 ‘응~ 샤워해~’하면 될걸..
you got 4 minutes! 이런다…. 괜히 마음이 바쁘다….ㅎㅎ 근데....이상하게도 4분만에
했다. 거지같이… 뭐 암튼 다 하고 나오니
데런이 또 피아노를 치고 있다 색히 잘 치는군 한마디 해주고 들어왔다. 맙소사 50분째 쓰고 있다. ㅎㅎ
책 좀 보다 자야지… 하루하루가 특별히 ‘우와!’ 이런 건 없지만 뭔가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나쁘지 않아. 거기다 오늘은 왈라비도 봤는걸 ㅎ
굿나잇!
이 집에서 키우는 두 마리 말. 모건 이랑 로지. 내가 저 중에 한 놈을 탔다 캬캬 위 사진에 왼쪽은 데런놈. 옆엔 론다아줌마. 아저씨랑 찍은 결혼식 사진을 봤는데... 완전 초미남 초미녀였다. 영화배우 닮았었는데... 검색 중... TADA!
영화 '기프트'에 나왔던
Tamara Feldman 닮았었다.

이 여자는 저 아줌마처럼 늙지 않기를 마음을 다해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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