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 생일이라고 아저씨와 함께 미역을 사러 나섰다. 오후에 갈 줄 알았었는데 아저씨가 알고 있는 마켓이 오후엔 문을 다 닫는다고 해서 10시쯤에 집을 나섰다. 제법 먼 거리를 달려 카불쳐에 도착. 하지만 아저씨가 알고 계셨던 그 가게는 이미 다른 집으로 바뀌어 있었고 우린 패닉에 빠졌다. 급하게 아이폰의 힘을 빌려 카불쳐에 아시안 마켓을 검색해서 찾아갔지만, 우리가 찾은 건, 말도 안 되는 가게들. 다시 한국상점을 검색 근처의 몇 곳을 알아냈다. 근데 이게 문제. 바로 ‘몇 곳’.
두 군데를 정해서 위치를 아저씨한테 설명하고 거리를 비교하고 있었는데 ‘어디를 가고 싶냐’라고 물어보신 거다. 가까운 데로 가자고 했는데 잘 전달이 안 됐는가 보다. 아저씨가 ‘You are confusing me’라고 했는데 내게는 ‘You are fucking annoying me’ 라고 들렸다. 가까운 데를 가자고 했지만 이미 다른 차선에 들어서 어쩔 수 없단다. 300m 떨어진 곳을 놔두고 700m 멀리 있는 곳으로 갔더니… 1시에 문을 연단다. 영업시간 외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도 짜증 나기 시작. 내가 못됐는지는 몰라도, 아저씨가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벌어진 일인데 카불쳐라는 곳에 처음 와보는 나한테 길 좀 잘못 선택했다고 그렇게 짜증을 내다니…. 미워.
할 수 없이 그냥 돌아가자고 했더니 뚝심인지 다시 300m 떨어져 있던 데로 가보자고 하시며 차를 돌렸다. 흠… 이 집은 12시에 오픈이란다. 매일. 25분쯤 남았었는데 기다려보자고 하신다. 속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기다리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12시가 됐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두 군데 다 불통이길래 메시지를 남겼는데… 흠…
12시가 지나자 아저씨가 저 앞에 성인용품집 문 열었다고 한번 물어보라고 하신다. 헉! 성인용품점… 한국에서도 한 번도 안 가본 데를 가라고 하시다니.... 냉큼 갔다. ㅋ 핏.. 별거 없었다. 대신 입구가 좀 길고 꺾여있다는 것. ㅋ 퉁퉁한 아줌마가 ‘메이 아이 헬프 유’하신다. ‘요 앞에 한국가게 주말에도 영업하는 거 맞나요?’ 했더니 좀 플렉시블 하단다. 오늘은 아무도 못 봤고.... 나도 아무도 못 봤다. 암튼 고맙다고 나와서 아저씨한테 상황 보고하고 다시 좀 기다렸다.
12시 반이 가까워 오자 ‘얘네들 안 올 거 같아요 그냥 가요’ 했더니 이번엔 진짜 간다. 가기 전에 근처에 울워스에 들리잖다. 뭐 사실 거냐고 물었더니 ‘담배’ 이러신다. 정확히 ‘cigarette’ 요렇게만. 흠. 괜히 짜증 나는 바람에 신라면이라도 사야겠다 싶어서 나도 갔는데 한 봉지 1.5? 안돼. 미고랭을 골랐다. 담배도 50g짜리 하나 사고. 계산하고 나오는데 젊은 총각이 따라 나와서 ‘설~’ 어쩌고 한다. 아저씨가 담배를 빠트렸던 거다.. 와 여기 사람들 친절하구나!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두 번째 들렸던 집이 오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가서 기다려보잖다. 어차피 돌아가는 길이라고.. 그래요..
가서 잠깐 기다렸더니 한국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50분쯤 됐을 때 아가씨 한 분이 가게 문을 열었다. 아저씨랑 둘이 들어가서 미역 있냐 물었더니, 있단다! 놀랬다! 카레나 사려고 왔는데.... 청정원에서 나오는 미역이었다. 오! 굿. 점심때 매운맛을 보여주자 싶어서 라면도 샀다. 진짜 맵게 끓여드리죠… 케케 아저씬 이런 데가 처음이신 듯했다. 신기한 듯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하시다가 오뚜기 설렁탕이 맘에 드시는가 보다. 이건 매운 거 아니다라고 했더니 드셔 보시겠단다. 싸비스로 하나 사준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고맙다는 말을 안 하신다. 응? 여기 사람들 그런 말 잘 하지 않나? 나중에 돈으로 주려고 그러시나? 당연하다고 생각 하시는 건가?
그렇게 장을 보고 들어오는데 집에 다 와서 드라이브 웨이에서 차를 세우신다. ‘저 앞에 뱀 있어!’ 이러면서 내렸다. 진짜 뱀이 꼬리가 터져 죽어 있었다. 그런 거로 죽나? 신기했다. 이름이 RED BELLY BLACK 이라고 하신 듯. 독이 있고 굉장히 위험한 뱀이란다. 그렇군.
Red-bellied black snake였군
집에 도착해서 짐 대충 풀고 라면 세 개를 끓였다. 메리 아줌마는 방금 점심 드셨다고 맛만 보신다길래 두 개는 다시 선반에 넣어놓았다. 보글보글. 잘 끓는다. 간을 살짝 봤더니....아.. 한국의 맛이다. ㅋ 고생 좀 하시겠군. 세 그릇에 덜어서 가져갔는데 아줌마는 잘 드시는 반면 아저씬 마치 순간 결핵 환자가 되신 듯했다.
지난번 언젠가 우리가 가끔 음식 먹을 때 내는 소리에 관해서 설명을 한참 했었다. 문화적 차이일 뿐이라고. 100% 공감해주시더라. 아줌마한테만 살짝 설명하고 힘껏 소리 내서 먹었다. 와 맛보다 소리내면서라면 먹을 수 있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다른 데서는 스파게티처럼 쪽쪽 먹다가 다 먹고 나면 한동안 입술 전체가 매워서 고생 깨나 했었는데.. 결국, 아저씨는 그 한 그릇밖에 못 드셨고, 난 어제 먹다 남은 밥까지 말아서 완전 빅 런치를 먹었다. 설거지는 늘 내 담당. 내가 하는 게 훨씬 속 편하지. 점심 먹고 언제 일하러 가냐니까 금방 간다 하신다. 몇 시쯤 가냐고 다시 물었더니 ‘I’ll come down and get you’ 오키. 그럼 좀 가서 누워야지.. 완전 달콤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 나갔더니 차에 타라신다. 지금 할 일은 드라이브 웨이 갓길 청소. 떨어진 큰 나뭇가지 등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아줌마 차에 끌고 내려온 트레일러에 한참 동안 덤불을 싣고 집으로 출발. 가지고 온 덤불을 내리려고 했더니 됐단다. 곧 태울 거라고. 어디서 태우냐 물었더니 조~기서 하실 거란다.
정말 공터가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온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차곡차곡 쌓고 불을 붙였는데, 간혹 완전 흠뻑 젖은 것들이 있어서 잘 안 탈 줄 알았는데, 기름도 없이 너무 잘 탄다. 불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완전 신나서 뛰어다니면서 불 살피다가 아저씨한테 사진을 부탁했다. A real hot fireman! 캬캬. 다 정리를 하고 내려와 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아저씬 와인. 농담 좀 주고받고 하다가 저녁 먹으러 출발.
뭐가 문제일까.. 뭔가 이펙트를 준듯한 원본ㅋ
오늘은 디너아웃. 가까운 마을에 있는 ‘호텔’로 간단다. 호텔? 오… 그래서 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조리 신고 가도 되나요?’ 물어봤더니 안 된다고 했다. 내가 감은 최고라니깐....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진짜 호텔인데 우리랑 호텔이라는 기준이 좀 다른 듯. 모텔 1층에 달린 레스토랑이었다.
벗. 음식 맛은 괜찮았다. 식사가 나오기 전 문신이랑 우리 가족에 대한 얘기를 좀 하다가 음식이 나오자 다들 합죽이. 나중에 ‘식사 중엔 말하는 거 싫어하세요?’ 물었더니 그렇단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싫으시단다. 흠. 암튼 잘 먹었어요. 다 먹고 밖에 담배 피우러 갔다가 한 분 한 분씩 들어가시길래 화장실 가시나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죽였다. 특히 감자
아저씨가 들어가시고 웬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걸어오셨는데 이 아저씨 완전 재미있다. 둘이서 시작한 대화가 3, 4…. 나중에 5명까지 됐다. 우프 하는 중이고 한국에서 왔고.. 어쩌고저쩌고 얘기하고 웃고 떠들다가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오시길래 구경이나 하자고 들어갔더니 슬롯머신에 베팅 중이시다.
나빠요. 재미는 별로였지만 구경 좀 하다가 나와서 비 오는 거 쳐다보고 있는데 아저씨가 다 끝나셨는지 나오셨다.
‘좀 땄어요?’
‘아무도 못 따’ ㅋㅋ
그러고 있는데 아까 마지막에 대화에 참여했던 아저씨가 가까이 오셨다. 올해 46이라고 하셨던 듯. 23살의 아들이 있고 베리 리스펙트풀 하단다. 만국 공통 자식 자랑.
이 아저씨가 말을 한참 하자 클리프 아저씨가 말벗이 돼주고 난 빠졌다. 두 분 얘기하시는 걸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갈 시간. 아줌마가 나오셔서 아저씨한테 자꾸 눈치 주신다. ㅋㅋ 그 아저씨랑 악수하고 빠빠이. 차로 돌아가는 길에 아… 저 아저씨 완전 힘드신가 봐요.. 근데 대화 중에 기억나는 건 저 아저씨가 ‘you know’를 5천 번쯤 썼다는 거랑 ‘but’을 3천 번쯤 썼다는 거에요. 잠깐 웃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그 아저씬 뭔가 나한테 불만이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 하루에 4-6시간 일하면서 재워주고 먹여준다고? 를 연발하셨다. 온리 4-6아워스? 흠…. 아저씬 집세 내고 각종 세금 내려고 돈 버는 것 같단다. 조만간 우프 책을 사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아저씨 얘기 들었던 걸 좀 적으려고 했는데, 소파에 앉아있는데 잠이 막막 쏟아진다. 오늘은 맥주 진탕 먹고 자려 했는데 아무래도 실패할 듯. 자자.
생일 축하해 동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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