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하는 선브레
8시 7분. 오늘도 늦잠 잤다. ㅎㅎ
일어나서 나가려고 옷 입고 있는데 데니스 아저씨가 노크하신다. 암커밍. 오늘은 토요일. 별다른 일은 없다. 그냥 시키는 거 하는 똑같은 날이다. 오늘의 할
일은 뭔가 물어보니 어제 하던 거 마저 해야 하는데 엄마가 다른 거 시킨단다. 어제 벌초해놓은
거 거둬오래 화단에 나무들 덮어준다고. 알았다. 치사한
놈. 지는 붕붕카 타고 다니면서. 나보고는
손수레로 다 거둬 들이란다. 나빠요.
뭐 하다 보니까 아버지랑 벌초하러 갔을 때 생각도 나고 재밌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해서 웃통 벗고 시작했다. 눈부신
속살을 거슬러주겠어. 한 번 수레가 가득 차서 나르러 갔을 때 방에 들어가서 선크림 떡칠을
하고 나왔다. 한참 하다 보니 아줌마를 어디선가 만났는데 ‘너
팬케익 좋아해?’ ‘당근이죠 완전 좋아해요.’ 기대된다.
근데 일이 점점 익숙해 지는 건지 시간이 안 가기 시작한다. 11시 반이 넘었는데 아줌마는 아직 밖에서 일하신다. 지금쯤
들어가서 준비해야 점심시간을 맞출 수 있을 텐데 걱정된다. 하지만 얼마 후 뭐라 뭐라 하면서
들어오라는 것 같다. 오케이 암커밍순. 하고
룰루랄라 갔다.
오늘 옷 벗고 일해서 그런 건지, 어제
해결하지 못한 숙변의 영향인지 화장실로 바로 갔다. 변기 깨지는 줄 알았다. 어쩌다 색깔을 봤는데… 녹색이다 ㅅㅂ....이거 런던에서 변기 속에 담긴 초록색 변을 봤을 때보다 충격이다. 여기선
와인도 안마셨는데 왜 녹색이지....
충격에서 헤어나와 주방으로 갔더니 어릴 때 보던 팬케익이 잔뜩 쌓여있다. 흐흐 맛있겠다. 거기다가! 무슨 골든 스위트? 뭐 그런 이름의 쨈 같은걸
발라 먹으란다. 버터랑 같이. 난 버터
싫어요. 버터 조금만 바르고 달콤이를 잔뜩 처발라서 가져갔다. 소파에....
와..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맛이다. 좋아 좋아. 하나 먹고 당연히
안 차지 한 개 더 가져왔다. 눈치 보다가 데런, 아유
피니시드? 좋아. 내가 다 먹어주지 세 장이나 먹었다
흐흐. 먹고 나서 설거지는 내가 했다 착하지. 설거지하고
돌아보니 아줌마가 좀 쉬든지 일하든지 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신다.
빨래는 언제쯤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지금 하란다~ 옹싸~ 세탁기에 넣는데 세탁기도 더럽다. ㅎㅎ 포기. 그렇게 넣어 놓고 데런은 내 눈치를 살짝 보는 듯하더니 어디 창고로 들어가고 난 내 일하러 갔다. 벌초 찌꺼기 수거. 하다 보니 시간도 잘 가고.... 무엇보다 좋은 건 등 근육이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거다.... 뭐
도끼질만큼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등 근육을 쓴다는 건 제법 섹시한 일이다.
좋아~ 오늘은 조깅을 한번 가봐야겠다
싶어서 아줌마한테 ‘나 4시쯤 조깅 갔다
와도 되여?’ ‘그래~어디로 가면 왈라비 볼 수
있을 거야~’ 땡큐~ 발만 씻고 운동화
갈아 신고 나섰다~ 나가는데 5시 반까지는
오라신다. 즐거운 저녁 시간~ 30분 정도 갔다가
적당한데 보이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나섰다.
지난번에 봤던 캠핑장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거기까지만
갔다 오려고 했었는데… 그래서 안 들리고 바로 패스~ 가다
보니 소친구들이 나온다. 이것들이 나를 신기하게 보는지 하나둘씩 모여든다… 한 스무 마리쯤 모인 거 같다. 전부 똑같이 생겨서
똑같이 멍한 표정으로 음…하면서 쳐다본다. 나도
신기해서 오른쪽으로 5m쯤 가니까 이것들 머리가 딱 내가 움직인 것만큼 움직이고… 뭐지.... 쇼 하는 거 같다. ㅎ 나중을 기약하고 다시 출발.
짬푸!
내가 한 팔뚝 한다. 한창 운동할
땐 오른팔 둘레가 44cm였다. 이것 때메
호스텔에서 독일 친구들이랑 한참 웃었는데…. 독일 래퍼 하나가 팔뚝이 44cm인데 툭하면 팔자랑 한다면서.... 이 친구 렌도.. 내가 the length of my arm
was… 까지 얘기했는데 44cm를 맞췄다. ㅋ 아 너무 멀리 왔네. 암튼
내가 아직도 한 팔뚝 하는데 내 팔뚝만 한 똥이 있다… 와 진짜 크다. 차마 못 찍겠더라 디러.. 온도로가 똥 천지다… 말똥인지 소똥인지 천지가 똥이다ㅋㅋ
그렇게 갔다가 돌아오는데 이 소친구들이 또 오르르 모여들길래 뭐 집어서 던지는 시늉을
했더니 진짜 눈.도.깜.짝. 안 한다. 뭐가 진 듯한 느낌. 후까시를 한번 줬다. 워! 색히들
지레 겁먹고 후다다닥 달려간다. 그만 도망가도 되는데 계속 가길래 나도 다시 출발.... 안 보일 때쯤 돼서 돌아보니 아직도 도망가고 있다. 멍청이들.... 뒤는 안 보는가 보다. 다시 열심히 달려와서
인사하고 샤워하고 올게요~ 말하고 샤워하러 갔다.
젠장.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다. 어느 쪽이 찬물인지 따신 물인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찬물로 일단 몸을 적셨는데 미치겠다. 머리랑 얼굴만 씻고 한 놈만 계속 틀어놔 보자
싶어서 왼쪽 걸 돌렸더니 따뜻한 물이 바로 나온다… 아.... 친환경시스템… 오랜만에 샤워한 기분이다. 완전 상큼. 다 씻고 오니 저녁도 다되어 간다.
오늘의 저녁은 첨 보는 요리. 늘
그렇듯 대게 첨 보는 요리다. 아줌마 대단하심. 사진
찍어놨다. 처음으로 사진 찍은 거 같다. 오해하시진
않겠지… 다른 것도 맛있었어요~~ 엄청난
당근만 좀 줄인다면 쿨~
저녁 먹고 커피 물 받아오니까 데런 실종. 몸이
좀 안 좋다면서 들어갔단다. 아줌마 아저씨랑만 있어서 흠 무슨 얘기하지 하다가 오랫동안 못했던
걸 말했다. ‘난 늘 예의 바르게 하려는데 혹시나 내 표현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면 부디
용서해줘요~ 몰라서 그런 거에요~’ 했더니 오 노노 너 그런 거 전혀 없었어~ 걱정 마~~ 흠… 예상했던 정도의 대답이 아니다… 뭔가 꽁한 구석이 있는 듯. 뭐 그렇다 해도 이해해주세요~ 전 진심 이라고요~ 말해주면 고칠 텐데 그냥 웃고만
넘어가니…
뭐 대충 그 얘기 끝나고 월요일에 읍내 마실 나갈 얘기.. 친환경 시스템 얘기. 맥북이랑 피씨랑 차이점… 이 정도 얘길 했던 것
같다. 두 분 완전 친절하시다. 땡큐베리머취~
내일 하루만 더 일하면 읍내 마실간다. 인터넷
하러! 근데 아침에 나가는 게 아니고 2-3시쯤
간단다… 난 아침에 나가는 줄 알았더니…. 시내
나가면 뭘 좀 사 먹어야지 생각했는데… 내가 먹고 싶다고 결정한 건… ㅈㄴ 뜬금없는 버거킹;;; 뭐냐 미친 건가… 햄버거 먹으면서 담배 피우고 싶다. 지나친 친환경에
노출된 나머지 오작동이 발생한 듯… 애니웨이 빨리 읍내 가면 좋겠다…. 오늘은 ‘티벳에서의 7년’ DVD가 있길래 이거 보고 잘게요~ 하고 빌려왔다. 영어로 본다. 흐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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